전시회 도록에 실려온 편지
서원영 개인전 [어느 성간측량기사의 비망록] 인사동 모란갤러리(02-737-0057)
2007년 10월 17일-23일
편지를 받아본 적이 얼마만인지요? 요즘에야 누가 편지를 씁니까? 핸펀이나 문자, 기껏해야 메일이지요. 그런데 엊그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희한한 방식으로요. 조각가 서원영이 3번째 개인전을 연다네요? 20년도 더 전에 몇 번 스쳐지났던 후배입니다. 그런데 그의 전시회 도록에 제 친구인 조각가 박태동이 글을 썼는데...그 글이 바로 제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아마도 2년 전 제가 박태동 조각전에 써줬던 글에 대한 답신(?)인 것 같습니다. [심산스쿨>심산서재>여백>한량일기] 8번글 [하찮음에 대한 경배]를 읽어보시면 저간의 사정을 조금쯤은 넘겨짚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도록을 훑어보니 걱정이 됩니다. 저는 가난했던 20대 시절(지금도 물론 가난합니다만...ㅋㅋㅋ)부터 미술품을 사들이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번 서원영 전시회의 도록을 보니...아무래도 현장에 가서 한 두 점 사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주 동화적이면서도 신비롭고...장난스럽습니다.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작품도 많구요. 아래는 박태동의 편지와 서원영의 작품들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시고, 시간이 나신다면, 전시회에도 한번씩들 가보시길!^^
친구 심산에게
이번 여름은 참 정신 사나웠다. 지난번 내 전시에 써준 글.. 고맙단 말은 했었지? 오늘은 네게 다른 예술가 한명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보려고... 서원영이라고... 왜 제법 오래전에, 그가 불량스런 눈빛으로 가득 차있을 무렵 같이 술도 좀 마시고 했었지. 알다시피 그와 나는 알고 지낸지가 무지하게 오래되었어. 외사촌 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그 같은 경우보다 더 가까이 지냈던 것 같아.
이 사람은 참 특이하다. 참으로 박학하기도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무척이나 논리정연하면서도, 가끔씩 감정에 휩싸여 사리분별을 못하기도 한다. 써놓고 보니 참 정신 사나운 인물처럼 느껴지겠다. 나는 그를 꽤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명이라 생각해.
이 친구는 글도 잘 써.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시험을 치르고... 이런 일들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더라고. 미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 지금도 자주 남의 전시에 평론도 쓰곤 하더라구. 그의 글도 비슷한것 같아. 불전(佛典)과 I.T 용어를 익숙하게 넘나들며 써붙이는 그의 글은 아주 세련된 문맥을 같고있는데, 역시, 청회색의 시니컬함이 밑에 깔려있는 채, 묘한 분위기로, 내 보기엔 평론 보다 순수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이야. 이게 좀 서먹한 느낌이 있어. 그래서 얼마 전 만나서 그런 얘기 좀 했거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더라구. 저도 작품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작품을 평하고 어쩌고 하는 게 잘 하는 건지 어쩐지 말야.
이 친구 이번 개인전 작품들 얘기 좀 해볼까? 무릇 어떤 변방 신화의 한 구석 쯤에 자리 잡고 있을 법한 그의 작품의 주제들은, 필시 그에게는, 무척이나 귀하고 소중한 것일게 분명해. 보통의 경우 별 관심주지 않는 것이 주인공이 되고, 어쩌면 주인공이 되어야 할 법한 주제가 귀퉁이로 쳐박히고 하는 그의 이야기풀이의 아이러니는, 가끔은 블랙 코메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해. 게다가 얼마나 공을 들여 다듬는지.... 그 공들임과 사소함 사이의 긴장은 나와 유사한 놀이를 즐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소한 내게는 아주 즐거운 감상 거리를 주고 있어.
나는 그의 신화를 존중해. 어떤 면에서는 존경하기도 하지. 나는 그가 어렸을 적 그려대었던 만화부스러기부터, 편집증에 가까운 집중력, 싹싹 쓸어 모아 잘 숨겨놓은 보물상자 속에 모아 놓고 있는 세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그의 세상은 참 지 맘 대로이고 무척이나 섬세한데, 또 여성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도리어 마쵸(macho)기질이 있다고 보여지기도 하는데, 헌데 꼭 그렇다고 얘기 하기도 좀 그렇단 말야. 아주 어려서부터 예의를 심하게 배워서 인지, 때론 그 자신이 불편할 지경일 꺼라 예상도 해보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끔 한 두번씩 난동(?)도 부려 모조리 상쇄 해 주곤 하더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니 내가 그런 그의 모습에 못마땅해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못마땅한 것이 무엇인가하면 말이야, 이 친구의 그 상자 속에는 그의 성격과 취향대로, 펑~ 하고 튕겨져 나갈 만큼의 자유분방한 보물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채 가득한데, 이 녀석은 그걸 다 까놓지 않고 있단 말야. 하긴....나도 잘 안되더구먼... 그런데, 이번에 작품을 발표한다고 여나무 점의 ‘물건’들을 만들었어. 앞에서 내가 신화 운운 한게 전시장에 와서, 그의 작품들의 제목들을 유념해서 감상하면 잘 이해가 될꺼야.
그간 조각에서 종교, 혹은 기존한 철학을 바탕해서 작품한 경우들을 몇 번 봤었는데, 그 때 내가 결심한건, “난 이렇게 작품하지 말아야지” 였어. 왜냐하면 말야, 종교, 혹은 그놈의 철학을 보여주려다가(아예 종교미술이라면 다르겠지) 정작 자기는 암말도 못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더라는 얘기야. 헌데, 이 친구는 그 균형이 좋은 것 같아. 원영의 작품들이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건 사실이야. 아마 종교는 갖고 있지 않을 껄. 어쩌면 그래서, 그의 아주 많은 학습 속에 포함된 여러 잡학들과, 그 종교적 성향이 뭉쳐있는 데다가, 그의 집요한 표현들로 한편의 뽀얀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몰라.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뭐냐하면 말야. ‘어느 성간측량기사(星間測量奇士)의 비망록’ 이란다. 벌써 내가 위에 한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지 않은가? 작품의 명제들은 더 재미있는데... 그건 와서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난 그의 감성을 알아. 잘 안보이지. 아니면, 다른 이 들에게는, 위장복을 입고 잠복 한 모습으로 접근 하는 것도 같아. 걔는 그런 착시를 즐기거나, 그런 접근에 반평생이 익숙해져 있는 지도 몰라. 이친구가 내 동생이 아니라면 난 필시, 그냥 재미있고, 같은 동료작가로써 작품을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고만 생각 할 것도 같아. 왜냐하면, 어지간한 작가들의 모습에서 이 사람만큼, 순수하다거나, 스스로에게 치열하다고나, 아니면, 재능을 감지한다거나 하는 감흥을 받기 어려웠거든.
어쨌거나 난 아직도 이친구가, 제 속내를 다 까놓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게 절제인지, 아니면 무거운 기류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면서 나는 중년의 서원영에게 이 녀석 저 녀석 하기도 하면서 예술가로 존경하네 어쩌내 하고있어. 왜 그럴까. 그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자신의 상자에서 나온 걸 가지고, 영합하려 들고 있진 않더란 말이지. 그가 여태 변변한 수입도 없으면서, 주머니속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자체를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난 참 고맙고 기특하게(?) 느끼고 있어. 헌데 이왕이면 내가 조금 들여다 본 그의 상자속의 보석 같은 신화들은 언제 다 보여줄런지...
나머지 얘기는 이 친구 전시 시작하는 날, 그의 작품도 감상하고, 술한잔 하면서 좀 더해 보자고..
2007. 9. 7 박태동 씀
[img2]히말라야를 찾아서/축음기
Tracking Himalayas/Gramophone
30*30*42cm Black Sandstone, Bronze 2007
열반/몽상
Nirvana/Pipe Dream
75*26*130cm Black Sandstone, Bronze 2007
휴운
Everything is All Right/Nimbus Reposing
16*32*2cm Bronze Relief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