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총수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심야택배사건
올해 중3으로서 이미 저 유명한 ‘한국의 입시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제 딸이 얼마 전 깔깔깔 소리 높여 웃어댔습니다. [한겨레]에 연재되고 있는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본 거죠. “아빠, 이거 읽어봤어? 이 아저씨, 넘 웃기고 통쾌해!” 내가 그 아저씨, 잘 알어, 라고 했더니 “정말?”이라고 반문하는 게 영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어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책에 싸인해서 내 딸한테 한 부 보내주라.” 그랬더니 우리의 딴지총수는 뜻밖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오토바이 타고 개인퀵하겠슴다 아빠 폼 좀 나시라고 ㅎㅎ”
김어준은 평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그는 이태원의 [WAgit]에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호주 쉬라즈 와인 [Lackey]를 꼭 한병씩만 사가지고 갑니다([Lackey]는 제가 좋아하는 와인으로서 [심산의 와인예찬]에도 등장하지요). 덕분에 우리는 그를 ‘래키장복자’(장기복용자)라고 놀려댑니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그가 래키 한 병을 가죽잠바 안에 쑤셔넣고 오토바이 굉음을 내며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사내...뭐 그런 느낌이지요.
본래는 월요일 자정에 저희 집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일날 갑자기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네요? 그래서 어제(목요일) 밤으로 다시 약속을 옮겼는데...어제는 또 무슨 인터넷 방송을 해야된다네요(나 원 참 그렇게 바쁘면서 뭔놈의 택배야 택배는)? 결국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오토바이 대신 차를 타고 저희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딴지총수로부터 직접 저자싸인본을 받아든 제 딸이 환호성(!)을 질러댄 것은 물론이고요. 이상이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심야택배사건‘의 전말입니다.
김어준이 저의 집에 머문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습니다. 들어보니 인터넷 방송 도중 잠깐 빠져나온 거라서 빨리 복귀해야 된다네요? 뭔 방송이냐고 물어봤더니 그가 킬킬대며 말했습니다. “요즘 모두들 너무 당하고 지쳐서 이명박 욕하기마저 포기했잖아? 나라도 계속 씹어대야지, 잘근잘근.” 그는 정말 유쾌한 사내입니다. 멋진 청년...이라고 쓰려다 보니 어느새 그도 벌써 마흔을 넘어선 중년 사내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젊음의 기준이 꼭 나이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나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에게 제가 선물한 와인은 ‘염소가 배회한다 회사(The Goats Do Roam Company)'의 [Goats Do Roam White]와 [Goat-Roti]와 [Goatfather]입니다. 그야말로 ‘딴지일보스러운’ 와인들(!)이지요. 두뇌회전 빠른 김어준은 이 와인들의 제목만 보고서도 박장대소를 했습니다(이 와인들의 ‘유머’를 설명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 그는 물건값에다 택배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얻어간다며 껄껄 웃었습니다. 이로써 제 딸과 김어준 그리고 저까지 세 사람 모두 해피(!)해진 거지요.
아 참, 말나온 김에...이 책 [건투를 빈다] 읽어들 보셨나요? 부제는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일데, 한 마디로 뒤집어집니다. 그런데 단지 농담일 뿐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온몸으로 인생을 살아온 멋진 사내, 그의 표현을 빌자면 한 ‘본능주의자’의 통쾌한 시선으로 인간관계와 세상사를 꿰뚫어본 근사한 책입니다. 게다가 글빨 아니 말빨은 또 얼마나 걸고 좋은지...So Modern and Unique! 김어준식 말투를 빌려쓰면 이렇습니다. 졸라, 재밌다, 쓰바.
P.S. 헤이 총수, 어제 고마웠어! 자네 덕분에 딸한테 가오 좀 섰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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