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길
제주올레 제4코스 표선~남원
글/심산(심산스쿨 대표)
사진/김진석(사진작가)
바다나 산에서 술을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경험적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어젯밤 숙소에서 반가운 지인을 만나 씩둑꺽둑 받고차기로 밤을 패며 마셔댔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니 정신은 말짱했고 몸도 가볍다. 게다가 하늘은 또 어찌 그리도 맑은지. 더 이상 이불을 끌어안고 게으름을 피워댈 이유가 없다. 간단히 물과 간식만 챙겨 넣은 배낭을 들쳐 메고 표선으로 떠난다. 표선의 맑고 정겨운 바다는 부지런한 올레꾼을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표선에서 남원에 이르는 제4코스는 바다와 중산간을 두루 아우르는 길이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돋아날 즈음 해비치 리조트 곁을 지난다. 서민들이 묵고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숙소이지만 별반 부럽지는 않다. 지금 이 시간에 럭셔리한 숙소의 침대 속에 파묻혀 코를 골고 있는 것보다야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는 것이 백번 나은 까닭이다. 갯늪과 너무름을 지나 거문어재며 가마리에 이르는 길은 그렇게 상쾌하다. 왼쪽 어깨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에서는 파도가 높아도 좋고 바람이 심해도 좋다. 파도소리가 귀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가마리 해녀올레에 닿는다.
가마리 해녀작업장 앞에 서자 돌연 난감해진다. 길이 끊겨 버린 것이다. 좌로건 우로건 우격다짐으로 가자면야 못 갈 것도 없겠지만 여지껏 오롯이 나를 이끌어오던 올레 표식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낡은 담요 따위로 허술하게 만들어놓은 작업장 문 앞에 반가운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그래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과연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도 될 것인가. 미심쩍은 손놀림으로 문을 반쯤 밀치고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돌연 호탕한 할머니의 쉬어터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온다. 아 뭔 눈치를 그리 봐? 여기가 올레길 맞아, 어여 들어와!
그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얼치기 관광객들을 상대하려고 얼렁뚱땅 흉내만 내놓은 전시시설이 아니라 실제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해녀작업장 안으로 불쑥 들어간다는 것. 게다가 운이 좋아 해녀 할머니가 방금 막 따온 싱싱한 전복을 덤으로 얻어먹기까지 했다는 것. 아니 할머니, 여기가 길이라면서 이렇게 오가는 사람마다 다 전복을 내주시면 어떻게 해요? 짭조름한 바닷물이 그대로 배어있는 전복을 우적거리며 내가 말을 건네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시며 반문했다. 누가 그래, 오는 사람마다 다 준다고? 말문이 막힌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할머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전복들을 손질하며 툭 내뱉었다. 그냥 아침부터 싸돌아다니는 게 불쌍해서 요기나 하라고 준거지. 밥은 먹고 다니나? 하이고 이런 놈의 길이 뭐 볼 게 있다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한심스럽다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나는 얼른 말문을 돌렸다. 이거 너무 맛있어요, 할머니도 많이 드시죠?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우린 그런 거 못 먹어, 너무 비싸서.
나는 할머니에게 사례할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내가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리자 할머니는 못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다. 담배나 있으면 하나 줘봐. 그리고 할머니는 마치 절망적인 봉수대처럼 담배연기를 피워 올리며 자신이 살아온 힘겨운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다 팔자 소관이려니 하는데, 이제 더 이상 해녀 일을 하겠다는 여자가 없어 이 직업도 대가 끊겨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할머니의 묵직한 삶 앞에서 나는 다만 무력한 청취자였을 뿐이다. 제주에 오간 것은 여러 번이다. 하지만 제주인의 삶을 이렇게 가감 없이 접하고, 그들 생활의 풍경 속살 깊은 곳을 목도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직 제주올레를 두 발로 걷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체험이다.
[img2]가마리 해녀올레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길이다. 언제 누가 이 길을 처음 걸었는가 따위의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 길이 지금처럼 뚜렷해진 것은 제주올레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따르면 이 곳에서 가는개까지 이어지는 바다 숲길은 35년만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가는개 앞바다에서 샤인빌 리조트까지 이어지는 바윗길은 더욱 특별하다. 남달리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베테랑급 제주 해녀들조차 비틀거리며 걸어가야만 했던 이 길을 지금처럼 평탄하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현역 군인들이다. 제주지역방어사령부 소속 93대대 장병들이 뜨거운 젊음의 근육을 아낌없이 혹사해가며 만들어낸 덕분에 이 길을 일명 ‘해병대길’이라 부른다.
해병대길의 끄트머리에서 만나게 되는 샤인빌 바다산책로도 기분 좋은 길이다. 역시 풍광이 근사해서가 아니다. 이 지역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샤인빌의 사유지에 속한다. 제주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럭셔리한 호텔리조트에서 제주올레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사유지를 공유하게 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잠시 해안도로를 버리고 망오름을 향하여 걸어가며 생각한다. 이 길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의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주는 행위를 뜻한다. 제주올레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망오름 정상에 올라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슨새미를 지나 다시 해안도로 쪽으로 걸어 나올 때의 일이다. 엉뚱하게도 작은 게 한 마리가 자동차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녀석이 안쓰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여 한 동안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기는 하나 이따금씩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길이다. 녀석이 본능적인 감각으로 자동차 바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결국 도로 횡단에 성공하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환희의 휘파람을 불어대며 박수를 쳐줬다. 녀석은 아마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든 세상이야. 먹고 살기도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들어. 하지만 살어, 죽지 말고. 그러다 보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미며 문득 행복해지는 순간도 겪게 될 거야.
남원 포구에 가닿기 전에 나는 깨달았다. 제주올레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길이다. 그곳에는 자신의 허름한 작업장 안으로 기꺼이 이방인을 맞아들이는 해녀 할머니가 있고, 아무런 보수도 없이 무거운 바위들을 등짐으로 옮겨준 청년 군인들이 있고, 자신의 사유지를 아낌없이 내어준 럭셔리한 리조트도 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아스팔트 자동차도로를 무작정 횡단해버린 작고 어여쁜 게 한 마리도 있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주올레는 쓸쓸했을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제주올레는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img3][제민일보] 2009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