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아래의 삶과 죽음
제주올레 11코스 하모~무릉
글/심산(심산스쿨 대표)
사진/김진석(사진작가)
오월 말의 제주에서는 벌써 햇살이 따갑다. 아침 일찍 배낭을 들쳐 메고 모여든 일행들은 모두 다 약속이나 한듯 반바지 차림이다. 오늘의 일행들 중 반가운 얼굴은 10대의 두 소녀들, 출판기획자 이진아의 딸 노진솔과 나의 딸 심은이다. 노진솔은 해외유학 중 잠시 귀국한 상황이고 심은은 저 유명한 ‘한국의 입시지옥’을 온몸으로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라 이번 휴가가 특별히 소중하다.
목적지로 향하는 차량에서부터 웃음꽃이 터져 나온다. 커다란 공사용 트럭을 빌려 여자들을 모두 운전석 옆 자리에 태웠는데 심은만은 유독 트럭 뒤 짐칸에 타겠단다. 오래 전부터 트럭 뒤에 우뚝 선채 씽씽 달려보고 싶었단 말이야. 덕분에 짐칸에서도 뒷켠에 쪼그리고 앉게 된 두 남자가 고역이다. 짐칸의 모래가 쉴 새 없이 날려 흡사 사막에서의 게릴라전을 방불케 한다. 누구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는 사진작가 김진석과 3D 애니메이터 백동진이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투덜대는 모습을 바라보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제주올레 11코스는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길이다. 섯알오름에 이르니 그 앞에 세워진 입간판의 내용이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기 시작한다. 아빠 보도연맹이 뭐야? 그 사람들을 왜 죽였어? 눈빛 맑은 10대 소녀들에게 들려주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역사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말문을 트랴. 판타지도 필요하지만 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제주올레 코스의 대부분은 멋진 풍광과 판타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제주올레 11코스는 역사의 기억과 현실의 직시를 요구한다.
알뜨르 비행장에 이르니 남겨진 관제탑 건물의 잔해가 흡사 설치미술 작품 같다. 가파른 데다 난간이 없어 아찔한 느낌을 주는 계단을 기어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알뜨르는 왜 알뜨르인가? 아래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 들판은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전쟁놀음을 위하여 ‘동원’되었다. 1926년부터 이곳에 대륙침략을 위한 항공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그 규모를 40만평까지 늘려놓았던 것이다. 이 대공사에 징발된 제주인들의 고통을 가늠해본다. 풍광이 아름다울수록 상처는 깊다.
오월의 뙤약볕이 열기를 더해간다. 아스팔트 위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 일렁이는 풍경들 속에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한 비행기 격납고들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도려낼 수 없는 상처들이다. 가해자는 이민족뿐만이 아니다. 백조일손 양민학살터에 이르니 동족상잔의 상처가 또렷하다.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이 떼로 묻혀있는 그곳에 ‘추모의 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잊은 아이들이 그 길을 걷는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달려 있는 제주올레의 파란 리본이 처연하게 흔들린다.
[img2]모슬봉에 오르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모슬봉 정상 부근에는 무덤들이 많다. 일종의 공동묘지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오늘 보고 들은 것들이 모두 끔찍한 역사의 기록들이다 보니 범상한 무덤조차 심상치 않다. 뙤약볕을 피해 모슬봉 아래의 그늘에 널부러져 앉아 요기를 한다. 일행들 모두 말이 없다. 식은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눈치를 살피니 특히 노진솔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입이 한 주먹이나 앞으로 나온 것은 그저 김밥을 씹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말을 아끼고 있지만 그녀는 표정으로 항변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길을 왜 걸어야 하는 거에요?
제주올레를 1코스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걸어온 사람이라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사 올레’라는 컨셉의 11코스에 대하여 기꺼이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너무 화려하고 멋진 풍경들만 질리도록 보아왔으니 이쯤에서 한번쯤 거쳐 갈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제주올레를 11코스로부터 시작한다면 자칫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너무 어둡고 우울하고 지루한 길인 것이다. 하물며 몇년만에 고국에 돌아와 신나게 놀고 싶은 청소년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주와 조국의 역사는 고사하고 제주올레 자체에 대하여 거부감부터 느끼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요령이 있는 법. 불만에 가득 찬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오늘의 코스 선택에 대하여 후회했다.
그래도 뙤약볕 아래의 성지순례는 계속 된다. 정난주는 정약용의 조카딸이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황사영의 아내다. 온집안이 풍비박산된 다음 그녀가 유배온 곳이 바로 이곳 대정이다. 그녀는 남은 삶을 ‘마리아’라는 천주교 세례명으로 살면서 굳건한 신앙을 지켰다. 정난주 마리아묘는 1994년 제주의 천주교 신자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대정 성지다. 하모에서 무릉에 이르는 제주올레 11코스는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죽음들을 음미하고 되새기며 걷는 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버겁지만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일행들의 표정에 평화로운 미소를 되찾아 준 것은 코스 말미의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내가 가본 가장 아름다운 숲이다. 이곳은 일본식 정원처럼 인위적으로 꾸며진 곳도 아니고 박정희식 개발독재처럼 단일 품종의 나무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 곳도 아니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그야말로 ‘제멋대로 어우러져’ 마구 뒤엉켜 있는 카오스의 숲! 곶자왈에 들어서니 오월의 뙤약볕도 힘을 잃는다. 시원한 그늘과 향기로운 풀냄새가 이승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웅변한다. 불현듯 괴테의 탄식 혹은 찬양이 떠오른다. 영원한 것은 오직 저 생명의 푸른 나무다.
당신이 가벼운 마음으로 깔깔거리며 눈을 호강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11코스는 추천하지 않으련다. 무려 20Km에 달하는 죽음의 길이란 얼마나 버겁고 고통스러운가. 하지만 한번쯤 우리 역사를 되새겨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깊이 침잠해보려 한다면 이 길도 나쁘지 않다. 떠나기 전에 제주와 관련된 한국현대사 한 두 권쯤 읽고 온다면 더욱 좋으리라. 모든 관광지란 판타지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숨겨진 상처가 있다. 상처를 직시하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갈 때에만 우리의 삶은 현실에 발을 붙이게 된다. 제주올레 11코스는 그런 길이다.
[img3][제민일보] 2010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