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박물관에서 걷다
제주올레 17코스 광령~산지천
글 사진/심산(심산스쿨 대표)
광령에서 제주시 동문로터리의 산지천 마당까지 이어져 있는 제주올레 17코스는 왁자지껄했다. 제주공항을 지나 제주시의 도심까지 진출했으니 그 어느 코스보다 도회적 분위기가 많이 풍겼을 뿐만 아니라 동행한 사람들의 숫자 또한 많아서 그랬다. 심산스쿨의 사진반, 와인반, 인디반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참여한 동행들이 열 명을 훌쩍 넘겼던 것이다. 게다가 17코스는 제법 길다. 18.4Km라면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꼬박 한 나절이 걸리는 길이다. 그렇다면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일행들 모두 눈을 뜨자마자 부수수한 얼굴로 서둘러 배낭을 메고 나왔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광령까지 꼬박 1시간 가까이 걸리는지라 아침 식사도 생략하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출발지점 근처에 무슨 편의점 같은 게 있을 거야. 거기서 간식거리나 잔뜩 사서 우적거리면서 가자구. 그런데 그 출발지점의 편의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편의점 여주인이 초췌한 인상의 우리 일행을 보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하이고 다들 참 내 여기 뭐 볼 게 있다고...아침이라도 잡숫고 나선겨? 아침도 못 먹었다고? 그럼 쫌만 기다려, 내가 밥을 해줄랑게, 대신 반찬은 그냥 된장찌개에 김치쪼가리 뿐이여.
세상에,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편의점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그것도 전자렌지에 돌린 햇반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밥솥에 지은 밥을? 커다란 냄비에 펄펄 끓인 된장찌개와 손으로 쭉쭉 찢어 내놓은 ‘집에서 담근 김치’가 한 상 가득 차려지자 일행들 표정이 절로 헤벌쭉해졌다. 서울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편의점 창고 안에 급조한 어설픈 식탁에 둘러앉거나 선채로 허겁지겁 ‘따스한 아침밥’을 먹었다.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유쾌한 농담과 즐거운 허튼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올레 17코스는 그렇게 처음부터 왁자지껄 웃고 떠든 길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무수천은 근사하다. 우리가 걷는 길의 발 아래 저만치 뚝 떨어진 곳에 기암절벽들이 꺼져 있고 그 사이로 옅은 물이 흐른다. 비가 많이 오면 우회하라고 써있는 것으로 보아 이따금씩 절벽 허리께까지 물이 차오르는 모양이다. 실없는 농담들은 지형에 따라 변주된다. 내년 장마 때는 여기 와서 래프팅이나 해볼까? 월대 위에선 비박하면서 와인이나 한 상자 비우고? 내도동의 알작지(조약돌) 해안에 이르자 여기 저기 낚시꾼들이 보인다. 이쯤 되면 또 프랑스에 낚시와인기행을 다녀온 무용담을 적당한 뻥을 섞어 늘어놓지 않을 수가 없다. 알작지 해안 근처의 작은 성황당에서 할머니 두 분이 제를 지내고 있다. 우리에겐 관광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생활이다. 웃고 떠들던 일행들의 목소리가 얼기설기 돌로 쌓아올린 성황당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잦아든다.
[img2]이호테우해변을 지나 도두동 추억애(愛)거리에 접어들자 다시 셔터소리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굴렁쇠 굴리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등 추억의 놀이들이 다소 어설픈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곳이다. 일행들은 말타기놀이 조각 위에 나래비로 걸터 앉아 조각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깔깔댄다. 참 흔한 말로 애 큰 게 어른이지 싶다. 이쯤에서 또 한 명의 동행이 합류한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이제 막 제주공항에 내린 박민주. 군대에 갔다 온 잘 생긴 아들을 둔 중년의 여성작가인데 어떻게 해서든 이번 여행에 끼고 싶어 이렇게 무리를 했단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리도 아니다. 제주공항에서 도두동까지는 택시로 5분 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제주올레 17코스는 그렇게 우리와 가깝다.
도두봉에 오르자 제주 북부해안과 제주시의 풍광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광령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니 17코스의 중간쯤 된다. 그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제주공항의 활주로가 발 아래로 뻗어나가 있다. 저마다 숱한 사연들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을 태우고 비행기는 끊임없이 앉고 뜬다. 도두봉 정상에 서서 문득 제주올레와의 인연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고마운 인연이다. 즐거운 인연이다. 고맙고 즐거운 인연들이 아름답게 얽혀져 이토록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제주올레와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가슴 속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 느껴진다.
도두봉에서 내려와 제주공항을 바닷가 쪽으로 우회한 다음 제주시로 진입하는 길은 또 다른 설레임을 준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서울을 지겨워한다. 그래서 훌쩍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서울이 보이면, 서울의 그 화려한 불빛과 고층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반갑다. 여기가 내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지 싶은 것이다. 제주시의 도심으로 진입하는 길에 느끼는 일종의 설레임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도시에 대한 설레임, 중심에 대한 갈망, 편의시설들에 대한 기대, 문화적 공간에 대한 그리움.
[img3]용두암을 지나 용연 구름다리를 지나면 ‘비취빛 벼랑에 새겨진 옛시’들의 공간에 다다른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大川]이 바다로 흘러드는 이 냇골은 예전부터 취병담 혹은 선유담이라 불렸다. 비취빛 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연못 혹은 신선이 와서 노닐던 연못이라는 뜻이다. 숱한 시인 묵객과 관리들이 이곳에 와 멋진 한시들을 남기고 글씨를 새겼는데 그 유적들을 모아 조성해놓은 공간이다. 낯익은 이름들이 여럿 보인다. 처음 보는 한시들도 여럿 보인다. 하루 종일 걷느라 지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선조들이 남긴 문자향 서권기에 잠시 도취해본다.
제주목관아를 지나 오현단에 이르렀을 때에도 선조들이 남긴 시비(詩碑)들이 내 발길을 붙잡는다. 송시열의 눈물과 김상헌의 회한과 송인수의 충성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대영박물관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국토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이다. 제주라고 하여 예외일 리 없다. 제주올레 역시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 안을 걷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17코스로 접어들면서 보다 촘촘히 진열되어 있다. 아무래도 제주도의 정치 경제 문화가 집중된 곳이 제주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17코스의 종점인 산지천 마당 부근은 아예 박물관 특별전시실이라 할만하다. 우리는 지금 제주라는 거대한 문화의 한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제주올레를 걷기 시작하도록 최초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신명희다. 우리가 제주올레 17코스를 걷고 있던 그날도 그녀는 일에 매달려 우리와 합류하지 못했다. 당시 그녀가 만들고 있던 책이 [제주올레, 박물관에서 걷다]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공동주최한 국립제주박물관 특별기획전의 두툼한 도록이다. 지금 내 손 안에는 그 책이 있다. 내가 걸은 모든 올레길을 박물관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내가 무심코 지났던 그 길에서 출토되었던 항아리와 손칼 그리고 도끼를 본다. 내가 껄껄 웃으며 지나쳤던 그 길에 서려 있는 역사의 아픈 현장을 본다.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와인을 마셨던 그 길이 옛사람들의 화첩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를 본다.
제주올레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렸다. 이 길을 다룬 책들도 이미 너무 많이 출판되어 있다. [제주올레, 박물관에서 걷다]는 이 무차별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뚜렷한 자기 좌표를 갖고 굳건한 닻을 내리고 있는 보물이다. 제주올레는 현재 17코스까지 개장되어 있다. 본래는 작년 말에 18코스를 개장할 예정이었고, 그 18코스에는 국립제주박물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구제역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과 직면하여 아직까지 개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 17코스는 그리하여 하나의 매듭이 되었다. 제주도의 큰 지도를 펼쳐놇고 보면 전체 코스의 약 3/4쯤 완성된 형태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걸은 제주올레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성찰의 시간에 [제주올레, 박물관에서 걷다]는 든든한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img4][심산스쿨] 2011년 3월 4일
그때 그 구멍가게 같은 편의점에서 먹었던 아침밥, 참 맛있었는데요, 그쵸??
또 가고 싶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