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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포처럼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꿈
심산의 와인예찬(29)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2007)과 샴페인 동 페리뇽
토니 길로이 감독의 [마이클 클레이튼](2007)은 제작발표회를 했을 때부터 내 촉각을 곤두세운 영화였다. 그만큼 대단한 감독이었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토니 길로이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렇다면? 내 관심의 대상은 토니 길로이라는 걸출한 시나리오작가였다. 제 아무리 많은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할리우드라 해도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길로이 가문은 맨키에비치 가문과 더불어 시나리오 쓰기를 가업(家業)으로 삼고 있는 뉴욕의 명문가이다.
토니 길로이의 아버지인 프랭크 길로이는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극작가이자 시나리오작가이다. 영화 속에서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의 생가로 묘사된 집이 바로 프랭크 길로이의 집이다. 프랭크 길로이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 큰 아들이 토니 길로이이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인데, 존 길로이는 영화 편집자로서 [마이클 클레이튼]의 편집을 담당했고, 영화배우 르네 루소의 남편으로 알려진 댄 길로이 역시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한다. 이쯤 되면 대단한 영화인 집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나리오작가 토니 길로이의 필모그래피는 내 입을 쩍 벌려놓기에 충분하다. 초기의 출세작이 [돌로레스 클레이본](1995)과 [데블스 애드버킷](1997)인데, 그가 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이때부터이다. 2000년대 초반의 나는 어떤 영화주간지에 ‘할리우드작가열전’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의 안테나에 잡힌 것이다. 곧이어 [아마겟돈](1998)을 발표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초짜’의 티를 벗지 못해 ‘할리우드작가열전’에서는 제외됐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자 토니 길로이는 시나리오작가로서 만개(滿開)했다. 저 유명한 [본 아이덴터티](2002) [본 슈프리머시](2004) [본 얼티메이텀](2007) 시리즈로 전세계의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던 것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바로 이 ‘당대 최고의 시나리오작가’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이 영화의 기획을 맡아준 사람은 그의 ‘오래된 친구’인 스티븐 소더버그였고, 기꺼이 주연을 맡아주겠노라 자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지 클루니였다. 어찌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까지의 설명만 듣고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이 영화를 봤다가는 자칫 배신감(?)에 몸을 떨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영화는 국내 흥행에서 참패를 기록했다. 이른바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혹은 긴박한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지루한’ 영화였던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좋게 봤다. 할리우드에도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증언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의 스토리 라인은 무척 심플하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뉴욕 최강의 파워를 자랑하는 거대 로펌 KBL에 소속되어 있는 뒤처리 전문 변호사이다. KBL은 최근 회사의 존폐가 걸린 소송 사건에서 황당한 짓(?)을 하는 내부 고발자와 마주치게 된다. 집단 소송에 걸린 U/노스사(社)의 전담 변호사인 아서 에든스(톰 윌킨슨)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집단 민원인들의 편에 서려는 조짐을 발견한 것이다. 만약 이 소송에서 지게 되면 KBL은 물론이거니와 U/노스사마저 파산하게 된다. 아서 에든스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한 우리의 마이클 클레이튼이 이 사건의 뒤처리에 투입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뒤처리란 아서 에든스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개봉될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바로 전직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내부 비리를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내부 고발자’가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고 음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없다. 한국의 김용철과 영화 속의 아서 에든스는 집중적인 견제와 방해공작 그리고 협박과 회유에 시달린다. 하지만 냉혹하기 잔인하기로는 아무래도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의 김용철은 대선 이후 조금 외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영화 속의 아서 에든스는 죽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U/노스사의 여성 법무팀장 카렌 크라우더(틸다 스윈튼)가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이 배신자(!)를 살해해버린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이클 클레이튼이 아서 에든스와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마이클이 호소한다. “도대체 왜 그래? 우리를 다 망하게 할 셈이야? 제발 정신병원에라도 좀 들어가서 입 다물고 있어!” 아서는 항변한다. “날 정신병원에 넣겠다고? 쉽지 않을 걸? 나 이래봬도 최고의 변호사야!”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며 회유하려 든다. “나를 무슨 적(敵)처럼 취급하지 말아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아서의 일갈이 가슴을 친다. “적이 아니야? 그렇다면, 넌 도대체 누구야?”
이 복잡한 현대사회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의 세계는 참으로 잔혹하다. 그렇다. 마이클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적어도 판을 깨지는 말자면서 아서를 설득하려 든다. 그렇다면 마이클은 회사의 편이며, 아서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때때로 이 사회는 우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다. 너는 누구냐? 괴로운 질문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회사를 위해서라면, 아니 나 개인의 안위와 치부를 위해서라면, 상식과 윤리 혹은 법률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이 괴롭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대부분의 관객으로부터 이 영화가 그토록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은.
아서의 죽음은 물론 자살로 처리된다. 깔끔한 프로페셔널들의 솜씨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이클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명치 아래께가 아파오는 것이다. 마이클이 누구인가? 최고의 뒤처리 전문가이다. 그는 아서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파고 든다. 여지껏 소심하고 무력한 따까리 변호사로만 살아오던 그가 감히 자신의 운명과 맞서려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려하는 순간이다. 마이클은 폴리스 라인으로 봉쇄된 아서의 아파트에 몰래 잠입한다. 을씨년스럽고 텅 빈 아서의 아파트를 구석구석 뒤지던 마이클이 어느 순간 움찔하며 얼어붙는다. 아서의 냉장고를 열어본 순간이다. 그 냉장고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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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집단민원인 가족들 중의 한 사람인 어떤 시골처녀를 사랑했었다. 그는 내일 아침이면 언론을 불러 확고부동한 증거자료들을 제출하며 양심선언을 한 후 그 처녀와 함께 축배를 들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아서의 텅 빈 냉장고에는 바로 그 준비물들이 들어 있었다. 샴페인 동 페리뇽(Dom Perignon)과 날씬한 샴페인 잔 두 개. 냉장고 안의 자체 조명에 의하여 희미하게 비춰지는 그 쓸쓸하고 가슴 아팠던 비주얼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컷이다. 그리고 마이클로 하여금 아서가 결코 자살하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하고, 끝끝내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서이기도 하다.
샴페인은 예나 지금이나 성공과 행복의 와인이다. 샴페인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모에 샹동(Moet & Chandon)에서 만든 최고급품(Cuvee Speciale)의 이름이 바로 동 페리뇽이다. 프랑스 샴페인 지방의 오빌레(Hautvillers) 수도원에서 와인 제조책임자(1668-1715)로 일했던 수도사 동 페리뇽의 이름을 딴 와인이다. 그가 샴페인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내질렀던 제일성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형제여, 빨리 와보세요,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습니다!” 덕분에 샴페인은 ‘스타 와인(star wine)'이라는 깜찍한 애칭을 얻었다. 경쾌한 개봉음(開封音)과 입맛을 돋우는 신맛 그리고 끝없이 올라오는 아름다운 기포(氣泡)는 샴페인만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샴페인 중에서도 황제라 불리우는 이 동 페리뇽에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했다. 기포처럼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꿈. 아서가 따지 못한 동 페리뇽을 떠올리면 명치 끝이 아프다. 그 근사한 모양의 병 옆에 수줍은듯 얇은 서리를 두른채 다소곳이 서 있던 날씬한 샴페인잔 두 개를 생각하면 가슴이 묵지근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청명한 종소리를 내며 부딪쳐야할 그 잔들은 이제 주인을 잃고 영원히 그 냉장고 안에서 유폐된 여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거대 기업의 숨겨진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나는 모른다. 다만 아서의 냉장고 안에 오두마니 남겨져 있던 동 페리뇽의 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는 고백을 토로할 뿐이다.
일러스트 이은
[ARENA] 2008년 2월호
꼭 봐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동페리뇽도..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