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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역을 잊다
심산의 와인예찬(38) [도쿄타워](미나모토 타카시, 2004)의 라 타슈 1992
일본 특유의 롤리타 콤플렉스와 아줌마를 위한 판타지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지 오래다. 이 해괴한 콘텐츠가 그들 특유의 현란하되 과격한 스토리텔링 기법과 맞물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 에구니 카오리의 연애소설 [도쿄타워]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명품으로 도배한 영상에 담고 남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낸 것이 바로 미나모토 타카시 감독의 영화 [도쿄타워]이다.
시후미(구로키 히토미)는 잘 나가는 CF 감독을 남편으로 둔 덕에 도쿄 아오야마에서 명품숍을 운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41세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3년 전 당시 18세였던 친구의 아들 토오루(오카타 준이치)를 처음 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이쯤에서부터 벌써 심기가 불편해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엄마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단 말이야? 그렇다. [도쿄타워]는 20살 연상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21살 청년의 이야기이다.
불륜이라면 지레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를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한 시퀀스도 제대로 보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에구니 카오리의 소설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는 적절치 않다. 남성적인 재해석과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멋진 음악과 패션 그리고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쿄의 풍경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만약 와인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이고 신음 섞인 찬탄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영화를 쓰레기라고 단정 짓고 나면 음악도 들리지 않고 영상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도덕과 윤리 따위를 저켠에 밀쳐둔채 눈을 감고 마음을 열면 의외로 근사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도회적인 노래는 노라 존스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Nights)'이다. 아름다운 것과 만나면 그것이 사라질까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토오루가 시후미의 손을 꼭 잡고 듣던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바장조 작품18의 2악장이다. 시후미가 더는 절제하지 못하고 토오루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할 때 스크린을 압도했던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의 4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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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비쳐지는 거리의 풍경과 배우들의 의상 역시 환상적이다. 도무지 지상에 존재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 몽환적인 야경은 모두 도쿄의 록본기와 아오야마에서 촬영되었다. 시후미를 감싸고 있는 옷과 소품들은 모두 구찌, 프라다, 루이 비통 등 당대 최고의 명품들이다. 여기에 덧붙여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와인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한다. 와인애호가들의 입에서 시새움 섞인 한숨을 내뱉게 만든 것은 시후미가 단골 레스토랑의 지하 셀러로 토오루를 불러내는 장면이다. 명품 와인들로 가득 채워진 그 셀러 안에는 VIP 고객들만을 위한 비밀 테이블이 단 하나 놓여 있다. 그곳에서 시후미는 토오루를 위하여 라 타슈(La Tache) 1992를 딴다.
부르곤의 포도밭은 작다. 흔히 말하는 샤또(Chateau)란 드넓은 포도밭을 가진 보르도에서나 통용되는 개념이다. 부르곤에는 샤또가 없다. 포도밭이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다. 심지어 그 작은 포도밭조차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가령 몽라셰(Montrachet)라는 그랑 크뤼 포도밭의 소유주는 무려 17명이나 된다. 보르도에 샤또가 있다면 부르곤에는 도멘(Domaine)이 있다. 본래 네고시앙에서 비롯된 개념인데 현재에는 여기저기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와인제조업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부르곤을 대표하는, 아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니 전세계를 대표하는 도멘은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로 유명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이다. 와인애호가들은 흔히 ‘디알씨(DRC)'라고 줄여서 부른다.
라 타슈는 디알씨가 소유하고 있는 그랑 크뤼 포도밭이다. 디알씨는 이 밭을 다른 도멘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유일한 소유주인 것이다. 이렇게 부르곤에서 단독으로 그 밭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병 라벨에 자랑스럽게 ‘모노폴(Monopole)'이라고 쓴다. 라 타슈는 디알씨의 모노폴이다. 1년에 고작해야 1,800상자를 만든다. [도쿄타워]는 지하 VIP 셀러에서 시후미가 토오루에게 와인을 따라줄 때 그 라벨을 빅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디알씨, 라 타슈, 모노폴, 1992.
왜 하필 라 타슈였을까? 라 타슈는 본래 얼룩이나 반점 따위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여기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덧입힌다. 그 얼룩이나 반점을 ‘불륜’의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라 타슈를 마시고 정사(情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사회적 지위에 혹은 내밀한 영혼에 묻어버린 지울 수 없는 얼룩, 그것이 불륜의 정체일까? 그래서 불륜으로 인하여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은 지상 최후의 음료로 라 타슈를 마시고 함께 죽어가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비용이 너무 비싸다. 라 타슈가 도대체 얼마냐고는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신 건강에 해롭다. 이쯤에서 천상병의 익살맞은 넋두리가 떠오른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못 가네.
시후미와 토오루는 정사(情死)를 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쿄타워]의 반전이다. 격정을 못이겨 또다시 토오루와 정사(情事)를 나눈 시후미는 회한에 젖어 여고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예전에 친구한테 책을 빌려서 전철을 탄 적이 있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려야 될 역을 놓쳐버렸어. 처음 내린 낯선 역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다시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도쿄타워]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이를 악물고 그 공포의 순간을 통과하여 ‘다음 역’까지 가버리는 것이다. 로맨틱하긴 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다. 그런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벌어졌으면 좋겠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나는 음미한다. 시후미가 내려야 될 역을 지나쳐가는 순간, 라 타슈 1992의 잊을 수 없는 향기가 영혼을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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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8년 7월 20일
제게는 영화가 별로였던 모양인데 '내려야 할 역'의 의미가 좋으네요.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와인 눈요기만이라도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