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에 가면 한국인 형님 있다네
샤모니에서 산장 운영하는 조문행
“이 프랑스 시골 마을이 산악인들의 고향이라는 건 몰랐지요. 본래 산과는 무관한 삶이었어요.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접고 처음 여기로 내려왔을 때 과연 이제 유학생이 아니라 주민으로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산악인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샤모니. 언제나 흰 눈이 덮여 있는 몽블랑(4807m)과 그랑조라스(4210m)의 첨봉이 있고, 근대적 방식의 알피니즘(등반)이 태동한 곳이다. 산악인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현지 주민은 9000명. 조문행(47)씨는 이 작은 산악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인 주민이다.
그는 ‘알펜로즈’라는 식당이 딸린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산악인들은 대부분 입 소문을 통해 이곳에 집합한다. 기자가 머물렀던 지난주에는 국내 최고의 클라이머인 정승권씨 일행, 여성 산악인 김점숙씨 일행,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대회에 출전했던 팀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조씨는 한국에서 온 이들 산악인에게 ‘친정 오빠’와도 같은 존재다. 등반 일정 동안 날씨도 체크해주고 통역도 해준다. 문제가 발생하면 뒷수습을 맡기도 한다. 그는 “우리 산악인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제게 연락하지 않으면 내심 섭섭하다”고 했다.
그림을 그렸던 그는 1985년 프랑스 파리2대학으로 유학해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러나 1992년 여러 가지 집안의 우환이 겹쳐 박사과정을 중도에 접고 한동안 여행가이드를 하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됐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리 산악인들에게 이곳의 높은 물가와 숙박비는 부담이 되겠지요. 이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나는 늘 7월 10일 이후에 오라고 합니다. 그때서야 여기 날씨가 안정됩니다. 그런데 산악인들은 그 전에 와요. 항공료가 높은 성수기를 피하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도착하면 시간에 쫓겨요. 이런 점이 안타깝습니다.”
산악인들은 한 번 이상 오기 어려운 이곳에서 대부분 한두 달씩 머물며 여러 알프스 봉우리를 옮겨가며 등반한다. 그는 이런 ‘장기 투숙’ 산악인들에게 숙박비를 깎아주고, 이들이 비용을 아낄 수 있도록 숙소 안에서 직접 취사하게 한다. “아내는 이런 점에 약간 의아해했어요. 저는 ‘그동안 한국 관광객들로 인해 먹고 사는 돈을 벌었으니 힘든 사람들을 잘 대해주자’고 말합니다.” 파리 유학 중에 만난 그의 아내는 일본인이다. 그는 알프스의 눈 덮인 봉우리까지 등반한 적이 없다. 향후 그럴 계획도 없다. 이 인상 좋은 ‘샤모니 주민’은 사실 배가 좀 나왔다.
글·사진 샤모니=프랑스 최보식특파원
[조선일보] 2006년 7월 20일
샤모니에는 제가 존경(?)하는 한국 산악인 허긍열 님이 상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