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통의 완전 소중한 그 맛
김대우의 맛집기행(1) 우신설렁탕의 곰탕
세상에는 참 많은 식당들이 있다. 현란한 간판에, 저마다 자기 집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이, 또 새로운 식당들이 매일같이 생겨난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 것이 막상 점심을 먹으려하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조금 걷다 보면 먹을 만한 곳이 나타나겠지 기대해 보지만, 그럴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참 많은 식당들이 있지만 모두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미식가는커녕 식도락가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입맛이지만 평소에 자주 들르는 식당들을 소개해 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일인당 만 원 이하 정도의, 기본적인 메뉴를 팔고 있는 식당들을 그 대상으로 하겠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집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 부근에 있는 우신설렁탕 (02-542-9288)이다. 지하철이 들어서기 훨씬 전인 28년 전부터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집이다. 오전 열한시만 지나도 자리를 잡기가 힘들 정도의 ‘흥행’이 이십년 넘게 이어오지만 내부 확장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한 집이다. 최근에야 본점을 자제들에게 물려주고 역삼동에 분점을 내어 노부부가 옮겨가는 융통성을 가졌다.
제목에서 보듯 주 종목은 역시 설렁탕이겠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곰탕을 더 소개하고 싶다. 이 집의 곰탕의 특이한 점은 살코기가 아닌 내장을 넣고 끓인다는 점이다. 내장이라 그러면 그 고유의 냄새를 떠올리며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집의 곰탕은 전혀 다르다. 누린내가 전혀 없는 맑은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그 맛이 깊고 내장고기들은 하나같이 신선하고 고소하다. 요즘 들어 방송이나 지면을 통해 맛집 소개가 잦아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식당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설렁탕집들을 가보면 대부분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국물 안에 든 고기에서 ‘쩐내’가 난다는 것이다. 고기를 삶아가지고 방치해 두면 산패하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데 그런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탕에 넣어 파는 것이다. 그런데도 맛있는 집으로 강력 추천되고 분점이 전국으로 뻗어나가니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신 설렁탕의 곰탕은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먹어보았지만 단 한 점의 고기에서도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한결같이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한결같은 맛을 내는 집, 그것이 우신 설렁탕이다. 굳이 약점을 찾는다면 김치의 맛이 좀 약하다는 것이다. 정통 왕십리 설렁탕 맛을 자랑하는 집이라서 김치도 서울식으로 담근다는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성이 좀 덜한 느낌이다.
노년의 안주인은 한 정치인이 신문에서 자기 집을 단골이라 소개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노라며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신문에서 오려낸 빛바랜 기사 속에는 젊은 시절 쿠데타군의 핵심멤버로, 이후에는 한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며 찬사와 비방을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이 웃고 있었다. 문득 바쁜 수저를 멈추고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바람소리를 ‘웅’하고 내어주었다.
[무비위크] 2006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