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 소박, 전통의 삼박자
김대우의 맛집기행(3)
조선옥의 갈비
번화하지만 화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리 바쁜 표정들은 아니다. 지나가다가 아는 가게의 주인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점심 먹으러 나온 회사원들은 그럴싸한 욕조가 진열장에 있으면 한동안 서서 보기도 한다. 이것이 을지로의 풍경이자 강북의 인상이라고 해도 될까. 이런 거리 귀퉁이에 6.25전쟁 이전부터 전통을 이어오는 조선옥 (02-2266-0333)이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좀 어둡고 테이블 간의 간격이 상당히 넓다. ‘절전’을 강조한 듯 자그마한 형광등들이 애써 실내를 밝히고 있는 내부를 훑어보며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대부분의 동행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이 집, 맞는 거야?” 하고 물어오기 일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집의 주종목 양념갈비를 시킨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동행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생겨난다. 고기를 시키면 당연히 준비되어야할 숯불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뿐인가, 실내는 아무런 음악도 없고 그 흔한 대형 벽걸이 TV도 없다. 그저 침묵 속에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이다. 다만 허술한 주방 유리벽 너머로 한 할아버지가 정신을 온통 집중하여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윽고 접시에 ‘다 구워진’ 고기가 담겨져 앞에 놓인다. 불안이 불만으로 바뀐 동행은 못마땅한 듯 고기를 한 입 뜯는다. 몇 번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든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씩 웃어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조선옥의 고기는 탄력이 있다. 진한 양념에 오래 잠겨 있어 거의 삭아진 그런 고기가 아니다. 양념은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난다. 각종 조미료와 향신료로 범벅이 된 맛이 아니라 장유와 설탕 등 기본 양념과 고기의 풍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런 맛이다. 거기에 탄불의 맛이 합쳐져서, 어릴 적 좋은 일이 있으면 어른들이 데리고 가서 사주던, 바로 그 갈비맛이 나는 것이다.
세상은 자꾸 이벤트를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고기만 해도 그냥 양념해서 구우면 주목을 받지 못한다. 와인에다가 담가두었다는 둥, 대나무 통에서 재웠다는 둥, 몇십 가지 약초를 먹인 소라는 둥, 뭔가 말거리를 만들어 내야 되는 모양이다. 어디 음식만 그렇겠는가. 사랑의 정도도 이벤트로 평가되는 세상이니까. 차 트렁크 뒤를 열면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장미가 쏟아져 나와야 하고, 농구시합 구경을 가도 하프타임에 전광판에서 사랑고백을 해야 한다. 의외성과 기발함이 강할수록 많이 사랑하는 것으로 칭찬받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퇴근길에 구두를 벗으면서 신문지에 싼 쇠고기를 어머니에게 내밀던 아버지. 어머니가 구워 내는 고기를 정신없이 먹어대는 자식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 “맨날 고기만 먹고 살고 싶다!” 라고 소리 지르는 나를 보시다 픽 웃으며 담배를 끄시던 아버지. 그 담배 연기와 뒤섞이던 고기 굽는 냄새. 조선옥은 그런 분위기와 맛이다. 아무런 이벤트도 없지만 왠지 먹고 나오는 발길이 훈훈한 그런 집이다. 오랜만에 간 탓인지 고기 구어 주시던 할아버지가 안 보여 한참을 망설이다가 여주인께 물어보니 이제는 연로하셔서 아래층에서 고기 다듬는 일을 하신단다. 왠지 마음이 더 푸근해 진다.
[무비위크] 2006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