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9-08-25 19:04:58 IP ADRESS: *.12.6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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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껴안은 쌀집 아저씨
-김영희의 [헉! HUG 아프리카] 서평

명로진/인디라이터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떤 이는 한 줄 글쓰기에도 퍽퍽하고, 어떤 이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김영희 피디라는 사람, 대한민국 교양 방송을 바꿨다는 말을 듣는 대PD인 그는 후자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멋지게 그린다. 게다가 MBC 방송국이라는 든든한 직장도 갖고 있다.

나는 잠시, 스포츠 신문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신입 기자 시절, 조영남 씨의 연재 원고를 받아 오는 일을 했다. 직접 가서 받은 것은 아니고,  팩스로 받아서 컴퓨터로 옮겨 적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절감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조영남씨는 글도 잘 썼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화단에서 인정받는 화가다. 게다가 그는 가수라는 든든한(?) 직업도 갖고 있다.

세상엔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살바도르 달리 류類의 인간들이 있다. 다른 인간들이 애써서 그리고, 애써서 글을 쓰고, 애써서 살아갈 때 달리 류의 인간들은 설렁설렁 그리고 놀멘놀멘 글을 쓰며, 든든한 직장 내지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 물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설렁설렁 놀멘놀멘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필요했는지 아느냐고. 모짜르트가 살리에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해도 살리에리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 한탄했을 뿐.

김영희의 <헉! 아프리카>를 읽으면서, 한 가지 일을 잘 하는 사람은 글도 잘 쓴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왜? 글은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명제는 모순이다. 진정성도 기교이며, 진정성 역시 단련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셀 수 없는 반복의 기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게으른 자의 책상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쌀집 아저씨는 쌀을 파는 틈틈이 수많은 책을 독파했을 것이다.

김영희는 케냐에서 잠비아까지, 모로코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아프리카를 종횡으로 누비며 느낀다. 무엇을? 아프리카를. 그린다. 아프리카를. 쓴다. 아프리카를. 모로코에서 결혼식을 빙자한 사기를 당할 뻔 하기도 하고, 냄새나고 녹슨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너기도 하며, 핸드폰 하나 값에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버릴 듯한 소녀를 만나기도 한다.

그가 만난 아프리카는 다양하고, 넓고, 무한하다. 그가 만난 아프리카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찬란하다. 그는 우리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지 않는다. 여행 노하우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뻐기지도 않고, 쉽게 감상에 젖지도 않는다.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를 연출할 때 처럼 능청을 떤다. ‘칭찬합시다’를 만들 때처럼 감성에 호소한다. ‘느낌표’를 내놓을 때처럼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던져 준다.   

김피디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사바나. 그래서 사파리 나온 관광객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프에서 내리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을 받는다. 사파리 도중 동물들의 습격을 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야생의 동물들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가이드들은 즉시 지프를 몰아 얼른 내뺀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풍광 속 기린도 사실은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것! 초원과 바다의 공통점은 아름다움으로 위험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답다면 경계하라!"

아름답다면 경계하라....그렇다. 아름다운 모든 것은 일단 경계하고 볼 일이다. 아름다운 꽃은 가시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 속엔 약육강식의 논리가 있으며, 아름다운 여인에겐.....치명적인 살기가 있다. 경계하지 않는 자에게 아름다움은 복수한다. 결과는 약하게는 흉터, 강하게는 죽음으로 남는다.

저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와인 도시 스텔렌보시의 포도밭을 여행하며 겪은 일이다.

"와인투어의 특징은 방문한 와이너리마다 마음껏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투어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벌써 취기가 돌기 시작한다. 방문하는 와이너리마다 서너 잔씩 마시니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얼큰해진 젊은이들이 점점 과감해지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기면 남자들은 주저 없이 대시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언행에 관대해진다. 급기야 마지막으로 들른 와이너리에서 네덜란드 여대생과 미국 청년, 독일 청년과 벨기에 아기씨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키스를 한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이 커플들의 사랑의 소리는 저녁놀 너머로 쉬지 않고 들렸다. 그렇다. 사랑은 짝을 짓는 행위다. 짝을 짓지 않는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와! 그렇구나. 사랑은 짝을 짓는 행위구나. 짝을 짓지 않는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 왜 그걸 몰랐을까? 왜 우린 늘 플라토닉 러브를 짝짓기보다 우선했을까? 알고 보면, 플라토닉 러브라는 것도 여성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그리스 시대에 성인 남성들이 미소년에게 느꼈던 동성애를 뜻한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사랑하면 키스하면 된다. 사랑하면 짝짓기를 하면 된다. 그 앞의 모든 말과 행위는 쓸모없다. 사랑의 아름다움 앞에선 경계의 조심스러움도 무너진다. 사랑의 중독성 앞에선 눈이 멀고 귀가 닫히며 뇌가 멈춘다. 진정 김피디는 외친다. 와인 마시고 짝짓지 않는 당신은 유죄!

<헉! 아프리카>는 예쁘고 꼼꼼한 책이다. 저자의 글과 그림이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 한 권의 깔끔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절묘하게 어우러진 일러스트와 텍스트가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필자는 <헉! 아프리카>를 읽으면서 내내 질투에 사로잡혔다. 글과 그림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는 15년째 프리랜서다. 내심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나처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 없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긴 그렇게라도 위로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프리 댄서(!) 생활을 견디겠는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수입 곡선에 따라 춤을 춰야 하는 프리들의 일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내 자부심은 글과 그림 뿐 아니라 감수성마저도 턱없이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김피디의 책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지쳐 널부러져 있는 내게 카운터 펀치까지 날린다. 이 책의 인세와 출판사 수입 전부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마실 물을 위한 우물파기 사업에 기부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헉! 아프리카다. 그러나 인세 수입으로 살아가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 이런 식의 행위는 가혹하다. 나는 남아있는 겸손함을 모두 짜내서 이런 분들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되뇌인다.

‘쌀집 아저씨! 내가 졌소.... 잘 먹고 잘 사시오.’     

[북모닝 CEO/ 090731]

강민정

2009.08.25 19:57
*.50.115.209
글 너무 좋습니다. 간결하고 명료하고... 그러면서도 감성이 우러나오네요. 세상이 불공평하다에 명샘도 한 몫을 하신다는 거... 아시고 이 글 쓰신 거죠? ㅋㅋㅋ

세상엔 참 멋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멋있는 사람의 글을 읽고 멋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그러고 살기에도 인생은 많이 짧기만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김희자

2009.08.26 11:14
*.10.111.39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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