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심산 [하이힐을 신은 남자]
두 남자의 마지막 입맞춤
육체를 빌린 영혼의 포옹
심산(1961~)의 두 권짜리 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1992)는 여성적 성정체성을 지닌 남자 민기의 이야기다. 소설의 또다른 주요 인물 현석의 눈에 처음 비친 민기는 “파마한 긴 머리가 어깨 위에서 찰랑거리고 (…) 목에는 얇은 줄의 금실목걸이가 드리워져 있었고 입은 옷 역시 여성용 블라우스 같은 것”이어서 남자라기보다는 여자에 가까운 차림이다. 뛰어난 요리 솜씨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씨 역시 여성적 특질이라 할 만하다. 소설은 이성애자인 현석이 동성애자 민기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축으로 삼아 민기의 성정체성이 ‘왜곡’된 연원을 파고들어간다.
소설 도입부에서 현석과 민기는 똑같이 자신이 놓인 현실과 불화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장인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사립대학 교수인 현석은 여당 국회의원과 검사 등 핵심 권력층인 처가 식구들에 둘러싸인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을 지니고 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는 그의 독백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소매치기파 ‘나인스타’의 일원인 민기도 동료들과 함께 간 룸살롱의 주지육림 속에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되뇐다. 이 두 부적응자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마주치고, 술을 매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민기가 사는 옥탑방 ‘천국의 계단’을 도피처로 삼는다. 처음 같은 침대에서 자던 날, 잠버릇을 가장해 자신의 몸을 더듬는 민기를 호되게 내쳤던 현석은 민기와 대화를 나누면서 차츰 그를 이해하게 된다.
민기를 지금의 민기로 만든, 그의 삶의 가장 큰 사건은 중학생 때 짝사랑했던 소녀 정희를 강제로 범했던 일이다.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냈으나 어느 땐가부터 까닭 없이 살천스럽게 굴던 정희였다. 친구들의 완력과 부탄가스가 그의 범죄를 도왔다. 그 결과 민기는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곳 방장 두찬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남성성을 버렸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민기가 “난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전에 한때 남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려!”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에게 남자라는 것이 부정해야 할 어떤 것임을 알게 한다.
민기와 정희가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다는 설정은 비록 비현실적이긴 해도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 정희는 그사이 영등포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처지로 떨어졌고 알코올과 약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민기는 자신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정희에게 현석을 대신 보내 마음을 열게 하고, 결국 정희를 수렁에서 건져내는 데에 성공한다. 정희 역시 종내는 민기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뒤틀린 생의 행로를 바로잡을 기회가 눈앞에 다가오는 듯하자 급작스러운, 그러나 예정되었던 파국이 들이닥친다. 현석과 민기 사이에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파국이 닥쳐오기 직전이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따뜻했다. 입술이 열렸다. 두 사람의 혀가 몸을 섞기 시작했다. (…) 키스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것은 성이 사상되어진 키스였다. 육체를 빌려 서로를 부둥켜안은 영혼의 포옹이었다.”
작가가 동성애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밀고나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근 20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동성애 문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동성애라는 민감한 영역에 거의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만으로도 [하이힐을 신은 남자]는 충분히 의미 있는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2010년 3월 12일
본래 ‘타고난 올빼미’인 저로서는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딸을 깨워 아침식사를 하게 하고 학교에 보내는 이 시간을
무척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기며 나름 즐기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커피부터 뽑습니다
지난 겨울에 구입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주 맘에 듭니다
커피를 갈고 내리는 이 과정에서 온 집안에 커피 향기가 퍼집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갓 배달되어온 신문을 뒤적입니다
인터넷도 좋지만...역시 신문은 잉크 냄새가 나는 페이퍼가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홀짝이며 신문을 뒤적이다가...깜짝 놀랐습니다
저조차도 거의 잊고 지냈던...
세상에 나온 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 당시에도 거의 팔리지도 않았고 언급되지도 않았던...
저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가 실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최재봉은 [한겨레]의 문학전문기자입니다
‘사랑의 풍경’은 그가 연재해온 문학 칼럼의 제목입니다
‘사랑의 풍경’은 오늘 날짜로 마무리되는 연재인데
최기자는 [하이힐을 신은 남자]로 이 연재를 끝냈더군요
[하이힐을 신은 남자](1992)는 공식적으로 저의 첫번째 장편소설입니다
두번째의 장편소설은 [사흘낮 사흘밤](1994)이고요
하지만 사실...이 두 편 모두 영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이힐은 신은 남자]는 본래 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였습니다
하지만 영화화 과정이 지지부진해지자...저는 홧김(?)에 그것을 소설로 각색하였습니다
제게 있어 [하이힐을 신은 남자]는
“시나리오와 장편소설 사이의 통로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소설에는 영상적 혹은 영화적 실험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소설가가 소설 속으로 개입하는” 내러티브의 실험도 시도되었습니다
[사흘낮 사흘밤] 역시 영화적인 시도로 쓰여졌습니다
“핸드 헬드 카메라를 어께에 메고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가 이 소설의 형식입니다
“그런데 그 감독 혹은 촬영자의 주관적 숨결도 함께 기록한다”는 것이
나름 [사흘낮 사흘밤]만의 미덕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흡족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다시는 저런 소설을 쓰지는 않겠지요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잊고 산 지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하지만...최근 들어...어쩌면 다시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20년만에 세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무지 게으른 작가가 되겠지요?^^
세 번째 장편소설에서도 ‘전혀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해볼 생각입니다
저의 의외로 ‘형식 실험’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하이힐을 신은 남자]...를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것이 20년 전쯤에 홧김에 휘갈겨 쓴 소설이라고 해도
어찌되었건 제 자식입니다
이제 다시 쓴다면 이것보다는 잘 쓰겠지요
문학사적으로 본다면 아마도 “국내 최초로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이 될 겁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한번 엎질러진 물은 영원히 엎질러진 것이고
“한번 지나간 것은 영원히 지나간 것”이니까요
아침에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치기만만했던 옛시절을 되돌아 보게 되었고
덕분에 아침부터 횡설수설했습니다...^^
애니웨이,
최기자님, 덕분에 옛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모자란 작품을 너그러이 보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