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9-06-10 18:04:56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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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인문학을 함께 즐기다

심산의 신간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바다출판사, 2019)의 서문

    

한참 종주산행에 빠져있을 때, 산은 그저 능선으로만 파악되었다. 능선들 중에서도 주능선만이 눈에 들어왔다. 지능선들이야 어느 골짜기로 빠져나가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한참 암벽등반에 빠져있을 때, 산은 오직 바위벽으로만 존재하였다. 그 바위벽 아래에 바짝 붙어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 걸어가야 되는 산길은 짧을수록 좋았다. 등산로가 스쳐지나가는 절집寺刹들은 그저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편의점 따위에 불과했다.

 

산은 그곳에 멈추어 있는데 세월은 흘러간다. 산은 변하지 않는데 인간은 변한다. 더 이상 집채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설 엄두를 낼 수 없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손톱만한 홀드를 움켜쥔 손 끝에 내 체중을 실을 자신이 없어졌을 때, 그래서 이제는 산을 떠나야 하나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었을 때, 산은 불현듯 여지껏 보지 못했던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산은 넓고 높고 크다. 산은 능선과 바위벽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어느 날 이름도 없는 계곡과 그곳을 무심히 빠져나가는 맑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바위에 깊게 새겨진 저 글씨들이 궁금해졌다. 이 절집의 편액은 누가 썼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산을 노래한 한시漢詩들을 음미하고 싶어 옥편을 뒤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당집과 당나무를 찾고, 허물어진 산신제단 앞에서 예를 갖추고,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마애불을 우러러보며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인문산행人文山行이 시작된 것이다.

 

인문산행의 개념은 아직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을 차곡차곡 구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하게나마 그 개념을 정의해보자면 아마도 등산과 인문학의 결합 혹은 콜라보Collaboration’ 정도가 될 것이다. 평지에서 행해지는 문화유산의 답사는 많다. 인문산행에서는 그 답사의 대상지에 산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이를테면 산악문화유산의 답사와 규명이 그 중요한 내용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75%가 산이다. 결국 인문산행의 대상지는 우리나라의 국토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인문학의 골간은 문사철文史哲이다. 그러므로 인문산행은 곧 이 나라의 전국토에 산재해있는 산악문화유산들을 문학과 사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발굴하고, 규명하고, 해석하고, 향유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이다. 뜻은 원대하고, 갈 길은 먼데, 내디딘 발걸음은 고작 몇 폭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문산행의 앞길에는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학先學의 전범典範이 많다. 가깝게는 김장호의 한국명산기(평화출판사, 1993)가 있고, 멀게는 조선시대에 집중적으로 생산된 저 숱한 산수유기山水遊記들이 있는 것이다.

 

인문산행에서 인문학과 결합한 것이 등산登山인지 유산遊山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사실 녹록치 않다. 조선시대에 한정하여 들여다보면 유산기는 찾기 쉬워도 등산기는 찾기 어렵다. 등산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구에서 발생한 다음 일본을 통하여 유입된 알피니즘Alpinism에서 연유된 개념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등산이면 어떻고 유산이면 또 어떠랴? 인문산행에서의 산행은 그렇게 등산과 유산을 뭉뚱그려 한 데 품고 간다.

 

이 책의 제1부 '서울경기 인문산행'20173월부터 20194월까지 진행한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의 공식기록이다. ‘청평산 품에 안긴 고려의 선원은 엄밀히 말하여 강원 인문산행으로 분류하여야 마땅하나 여기에 그냥 함께 실었다. 2017년의 기록은 월간 에 연재되었고, 2018년 이후의 기록은 월간 사람과 산에 연재되었다.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두 산악전문지 측에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은 조직적인 팀플레이Team Play로 이루어졌다. 1986년에 창립된 한국산서회는 최근 사단법인으로 전환되었으며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인문산행팀이라는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꾸렸다. 내가 팀장과 집필을, 조장빈 이사가 고증과 답사를, 허재을 이사가 진행을, 서영우 회원이 사진을 맡았다. 한국산서회와 인문산행팀 그리고 행사에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 책의 제2부 '유북한산기'20003월호부터 20012월호까지 월간 사람과 산1년 동안 연재한 글들이다. 연재 당시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매달 그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코스를 선정하여 12번에 걸쳐 북한산에서 노닌 기록인데,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고증이 부실했던 대목이 드문드문 눈에 뜨이나 굳이 손을 대지는 않았다. 집필 당시의 현재성도 유산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의 대부분은 내가 직접 찍은 것들이다. 본래 서영우가 찍은 멋진 사진들도 많았으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행사사진들은 가능한 한 제외시키자는 편집부의 방침에 따라 그리 되었다. 사진 솜씨가 졸렬하여 죄송할 따름이다.

 

이 책의 제목을 놓고 오랫동안 고심하였다. 결국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으로 결정하였다. 2유북한산기에서 제1서울경기 인문산행으로 넘어오는 세월은, 등산에서 유산으로, 유산에서 인문산행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오는 과정이기도 한데, 결국에는 산에서 역사를 만나게 되는여정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하여 나의 산악문학 저서 또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질정叱正은 나의 몫이다. 다음번에는 좀 더 멀리 가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리라 다짐한다.

 

2019년 여름을 맞이하며

노고산 아래 집필실 심산재深山齋에서

 

심산沈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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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9.06.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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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올 나의 새로운 저서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이 출간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수 차례에 걸친 교정 교열을 모두 끝내고 표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6월 이내에는 출간되리라 본다

 

이 책의 맨 앞에 실릴 '서문'을 맛뵈기(?) 삼아 여기에 올린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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