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공주가 아닌 사람들
게리마셜의 [프랭키와 자니]
공주는 예쁘고 왕자는 멋지다. 악당은 결국 응징되고 두 사람의 사랑은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는다. 초등학생이나 사춘기의 소녀에겐 이정도록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들에게라면 영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이런 팬시상품 같은 사랑의 꿈을 간직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고된 것이다. 게리 마셜의 [프랭키와 자니](Frankie & Johnny, 1991)는 우리의 힘든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사랑을 찾으려 애쓰는 평범한 캐릭터들을 따스하게 그려낸 사랑 영화다.
자니(알 파치노)는 복역 기간 중 요리 솜씨를 열심히 갈고닦은 덕분에 출소 즉시 뉴욕 뒷골목의 허름한 음식점에 취직하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 프랭키(미셸 파이퍼)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든다. 놀랍게도 스토리라인은 이게 전부다. 이 영화는 연적도 없고 음모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프랭키에 대한 자니의 구애 과정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그려나갈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가 재미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프랭키와 자니는 둘 다 평범한 캐릭터다. 프랭키는 폭력남편에게 시달렸던 과거가 있고 자니에게는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순가? 자니의 구애과정을 들여다봐도 특별한 게 없다. 그저 닫혀있는 프랭키의 마음을 열고자 참치샌드위치를 만들어 바치며 익살맞은 농담을 늘어놓는 정도.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사랑이야기가 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걸까?
[프랭키와 자니]는 우리가 늘상 부대끼며 생활하면서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의 내밀한 상처와 외로움 그리고 갈망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이른바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나름대로의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사랑이 탄생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포착해 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그이만의 광채와 온기를 찾아낼 수 있는 게 사랑의 힘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히트했던 테렌스 맥낼리의 연극 [달빛 속의 프랭키와 자니]다. 덕분에 카메라가 저마다 외로운 캐릭터들을 비출 때마다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곡 [월광]이 화면 위로 흐르는데 그 선율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다.
[동아일보] 2003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