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가 아니라 미와시라니깐!
수오 마사유키의 [으랏차차 스모부](1992)
인간이 아니라 무슨 살덩이처럼만 보이는 사내들이 사타구니만 겨우 가린 채 모래판 위로 오른다. 소금을 뿌리고 두 발로 모래판을 탕탕 구르는 동작은 흡사 영역 다툼에 나선 야만의 짐승 같다. 국외자의 눈에는 그 게임의 룰이라는 것조차 모호하게만 보인다.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는 그렇게 우리의 정서와 멀리 떨어져있다. 심지어 일본의 신세대 젊은이들에게조차 그것은 따분한 구닥다리 스포츠일 뿐이다. 적어도 수오 마사유키의 영화 [으랏차차 스모부](1992)가 일본 열도를 뒤흔들기 전까지는.
대학 졸업반 슈헤이(다케나카 나오토)는 요령 좋은 뺀질이다. 고루한 전통을 비웃고 힘든 일을 싫어하며 눈 앞의 이익만을 쫓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요즘 젊은 것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몸만 대학에 남아있을 뿐 마음은 이미 졸업 후의 회사생활을 꿈꾸며 콩밭에서 노닐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재앙이 들이닥친다. 대리출석 사실을 적발해 낸 아나야마 교수(아키라 에모도)가 "대학 스모부에 들어오지 않으면 졸업학점을 줄 수 없다."는 해괴한 최후통첩을 보내 온 것이다. 슈헤이는 어이가 없어 펄쩍 뛴다. "날더러 기저귀만 차고 모래판 위에서 뒹굴라구요?!"
기상천외한 코미디의 시작이다. 홀로 스모부를 지키고 있던 유급생 선배는 슈헤이의 말꼬리부터 붙잡고 늘어진다. "기저귀가 아니야. 미와시라구!" 그들은 막무가내로 부원모집에 나서지만 이 ‘시대에 뒤떨어진’ 스포츠에 기꺼이 자신의 젊음을 바치겠다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납치되다시피 끌려온 자들은 하나같이 덜떨어진 캐릭터들뿐이다. 아나야마 교수는 이 오합지졸의 캐릭터들을 데리고 대학 스모부 재건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펼쳐 보이는 좌충우돌의 코미디가 더 없이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으랏차차 스모부]는 가장 일본적인 내용을 가장 할리우드적인 포맷 안에 담아 솜씨 좋게 빚어낸 폭소탄이다. 관객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이 영화를 보며 배를 잡고 웃다가 결국엔 그토록 생소해 보이던 스모의 세계에 매혹되고 만다. 수오 마사유키가 현대 일본 영화계에서 ‘뉴웨이브 엔터테인먼트의 개척자’라 칭송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예술이 본의 아니게 혹은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애국적 역할을 해내는 경우를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 2003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