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바람을 찾아라
캐롤 발라드의 [바람과 야망](1992)
흔히 서양의 부호는 숱한 선원들을 거느린 대선박으로 상징된다. 항해(Sailing)는 꿈을 좇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토록 낭만적인 그들만의 꿈이 이른바 ‘신대륙 발견’이라는 비극을 낳고, 결과적으로 약탈을 위한 정지작업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역사의 서글픈 아이러니다. 지금도 서양인들은 항해에 열광한다. 서양인 배낭여행자들에게 노년의 꿈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멋진 요트를 한 대 사서 세상의 모든 바다를 주유해 보고 싶어요.”
그들에게 있어 모험가의 모델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던 어니스트 섀클턴이나 최고의 산악인에서 최고의 항해사로 변신한 빌 틸먼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신대륙의 발견’ 따위는 없다. 대신 그들은 파도를 가르며 거침없이 달리기를 열망하던 그들의 꿈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스포츠를 하나 만들어냈다. 바로 ‘항해 경주’다.
캐롤 발라드 감독의 영화 [바람과 야망](1992)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아메리카 컵 대회’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항해 경주다. 매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이 대회의 룰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다 한 복판에 부표를 띄워 놓고 어느 팀의 배가 먼저 그것을 돌아 결승점으로 돌아오느냐를 겨룬다. 선장을 포함하여 10명 내외의 선원들이 탑승하는데, 전혀 새로운 디자인의 선체와 돛을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어떤 종류의 것이든 엔진을 장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즉 오직 바람의 힘만을 이용하여 바다 위를 달리는 것이다. 너무 단순한 게임이어서 싱거울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항해 경주에는 굉장히 복잡한 메커니즘들이 한데 녹아있다. 선장의 리더십, 선원들의 팀웍, 체력과 정신력, 전략과 전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람을 읽는 눈’이 필수적이다. 앞선 배가 의도적으로 바람을 차단하여 뒤에 따라오는 배의 돛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패배를 딛고 재도전에 나선 신예선장 윌(메튜 모딘)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건 우리만의 바람을 찾는 거죠. 다른 배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항해해야 승리할 수 있어요." 박진감 넘치는 화면의 구석구석에서 제작을 맡았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일급 스포츠 영화다.
[한겨레] 2003년 9월 30일